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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비다냐 루스까야 제브쉬까
이경돈 님의 글입니다. 2009-09-25 22:27:33, 조회 : 2,428, 추천 : 484

얼마 전 러시아의 원동지역(연해주, 하바롭스크주, 아무르주)으로 답사 겸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인지라 뵈는 것도 얼마 안되고 힘도 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나같은 날라리가 책상에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천성에 대한 모독이었을까. 잘 노는 것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러시아까지 날아가서 새록새록 깨달았다.

시베리아횡단열차는 명불허전이었다. 9288km, 최단시간 7박 8일, 서유럽과 동아시아를 잇는 세계 최장 철도.......
48시간을 달렸건만 그저 러시아의 동쪽 언저리만 헤매다 왔다. 
그래도 인연의 끝자락에 닿았던 루스까야 제브쉬까(러시아 아가씨)는 아름다웠다.
 
처음 도착한 곳은 하바롭스크. 러시아 원동지방의 중심도시. 여전한 어지럼증 끝에 도착한 하바롭스크 공항의 풍경은 그야말로 이국적이었다. 친구의 결혼식 들러리를 섰던 몇몇이 공항 앞에 남아 보드카를 마시고 술병을 깨며 놀고 있었다.(여기서는 흥취에 겨우면 술병을 던져 깨뜨리는 풍습이 있단다) 그 중 샛노란 원피스의 제브쉬까(꼭 이렇게 불러야 한다. 러시아니까)는 바람을 핑계로 살짝 속옷까지 보여주고는 웃었다.
 
19세기 중반 하바롭스키라는 탐험가에 의해 유럽에 알려져 이름이 하바롭스크가 된 도시. 그들은 발견했다지만 비슷한 시기 그곳으로 수많은 한인들이 넘어갔다. 스탈린 시기 연해주 인구의 80%를 상회하는 약 20만의 한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다고 하니 그곳에 김치냄새가 나는 것도 기이한 일은 아니다.
어디 한인 뿐일까. 거리에서는 한국인과 몽골인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브리야트족, 나나이족들을 간간이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박물관엔 민속의상만 전시되어 있었지만 그들 역시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처럼 많은 피를 흘렸을 것이다. 우리시대, 지구 어디를 막론하고 피냄새를 품고 있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하바롭스크는 아시아였다가 유럽이 되어버린 그래서 유럽도 아시아도 아닌 제3의 대륙이었다.
 
역사학도들을 따라 한인 유적지 몇몇을 둘러보다 지쳤다. 나는 꼼수를 냈다. 몇몇을 꼬여내 시장에서 과일을 사먹고 광장에서 사진찍기 놀이를 즐겼다. 워낙 이색적인지라 얼굴 구분도 잘 안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일품이었다. 물론 개별 행동한다고 혼났다. 그렇다고 굴할 내가 아니지. 여행이 끝날 때까지 호시탐탐 사람 구경할 기회를 엿보았다. 루스까야 제브쉬까와의 인연도 그러한 처절한 투쟁 끝에 쟁취한 신의 선물이었지......오 위대할손 나의 끈기.
 
하바롭스크의 놀을 보며 블라고베쎈스크로 가는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올랐다. 객차의 옆면으로 자랑스럽게도 블라디보스톡-모스크바 라는 출발지-행선지 표시가 붙어 있었다. 멋지지 않은가?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라니....
 
4인승 객실은 비좁았다. 1평 남짓의 방에 2개의 의자 겸 침대가 놓여있고 다시 앉은 이의 머리 위 20cm 높이에 다시 침대가 매달려 있다. 위 아래 침대 모두 벽으로 접을 수 있는데 아랫칸에는 짐을 보관할 수 있고 윗칸에는 담뇨 등을 보관하는 찬장 같은 것이 있다. 좁은 공간이지만 탁자며 사다리며 소지품을 보관하는 그물 주머니까지 필요한 것은 다 있었다. 차장은 홑겹의 커버를 가져다 주며 러시아어로 쉬라쉬라한다.(알고 보니 내릴 때 반납하란다. 피곤해 묻어나는 목소리였지만 제브쉬까는 씩씩했다)
 
역전 마가진(슈퍼마켓)에서 준비한 보드카와 맥주를 꺼내 소시지와 연어알을 안주로 시간을 까먹었다. 창밖으로 열린 아무르주 벌판의 하늘에는 별 반 어둠 반, 손 뻗으면 한움큼 별이 잡혔다. 보드카 기운으로 오지도 않는 잠을 청했다. 그도 그럴 밖에 보드카 마시는 일 빼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새벽에 깼다. 비행기로 2시간 반의 거리임에도 왠지 먼곳에 왔다는 긴장감이 가시질 않았다. 여전히 새까만 어둠은 계속되고 있었다. 광궤의 바퀴소리에 무심히 귀를 열고 있으니 어느덧 눈도 열리고 있었다. 황무지.......
 
붉은 햇자국을 배경으로 온통 황무지.
 
이곳에 사람이 많지 않다는 말이 손끝에 닿았다. 광막한 지평선 위로 싯붉은 덩어리 오르는 내내 황무지도 끝끝내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눈 아리지 말라고 가끔씩 나타나 달려드는 햇빛을 가려주는 자작나무 숲이 있어 감사했다.
 
하바롭스크는 하바롭스크주의 중심도시이고 블라고베쎈스크는 아무르주의 중심도시이다. 중국의 흑하라는 도시와 아무르강(중국명 흑룡강)을 사이에 둔 교역도시이다. 중국은 러시아에게도 공포인 모양이다. 도시의 곳곳에서 생활용품을 상품을 파는 중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들으니 그들은 새발의 피란다. 그 때 여권 단속 기간이어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있었다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중국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것일까. 중국은 무섭고 중국인민의 삶은 무겁다)
 
블라고베쎈스크에서 1시간 벨로고르스크라는 시골로 갔다. 일행 중 한분이 그곳의 사업가들과 비지니스를 한 적이 있어 농장을 방문하는 귀한 기회를 얻었다. 소, 말, 양 구경 실컷 한 뒤, 양 한마리 통째로 잡았다는 식탁에서 자작나무 숯으로 구운 샤실릭(양고기 꼬치구이)를 두고 러시아식으로 보드카 원샷이 시작되었다. 주인을 비롯한 사람들이 차례로 감사와 기원의 인사말을 하면 보드카를 한잔씩 들이키는 것. 6잔 쯤 하고 나서 우리는 손 들었다.
 
우리의 숙소는 그야말로 촌의 여관이었다. 수도꼭지에서는 녹물이 나오고 침대는 심하게 삐걱거렸다. 바닥의 장판은 먼지투성이였고 창문은 제대로 열리지도 않았다. 그래도 잘 잤다. 시베리아횡단열차의 밤보다는 열배쯤 편안했으니까.
 
참변이 있었던 자유시를 둘러본다는 핑계로 시골의 시장과 마을을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산이 거의 없었다. 50m쯤 되는 구릉의 이름이 벨로고르(흰산)여서 이곳의 지명이 벨로고르스크가 되었다니 산이 얼마나 없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광야를 달리는 것도 그 때 쯤에는 신물이 난다. 그날 밤 또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하바롭스크로 돌아왔다. 물론 보드카와 함께.
 
하바롭스크의 유적을 둘러보았다. 동청철도 건설의 유공자였던 김니꼴라이의 이름을 딴 김유찬거리를 본 후, 콤소몰스카야 거리의 육감적이고 관능적인 풍경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이쯤되면 나이드신 분들 자꾸 길가에 주저앉는다. 그도 그럴만했다. 고집피우는 한명의 문학도 때문에 조명희가 선봉과 레닌기치를 편집했던 작가동맹건물을 찾아다닌다고 헤매고 있었으니....난 어젯밤의 보드카가 그때까지도 깨지 않았다.
 
그날, 하바롭스크의 밤, 춤추는 금발의 제브쉬까..........그곳에서 난 나의 삼십대에 안녕을 고했다.
 
다음 일정은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톡. 흔히 해삼위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해삼이 많이 났다나 뭐라나. 어쨌든 처음으로 타는 낮 열차였다. 서서히 단풍이 물들어가는 연해주의 지평선은 광대했지만 매력적이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길 나그네 길조차 없었다. 사람이라곤 한두시간에 한번 서는 역 주변에서만 볼 수 있었다. 조금 오래 정차하는 역에는 마을 바브쉬까(아줌마)들 음식을 들고 나와 좌판을 벌였다. 말린 연어(코다리 비슷함)와 연어알 사서 흑빵에 싸 먹었다. 괜찮은 점심이다.
 
열차는 또 달린다. 첫날 하바롭스크에서 블라고베쎈스크까지 12시간, 다시 블라고베쎈스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12시간. 또 하바롭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12시간....... 시베리아횡단열차의 끝에서 끝까지라는 로망을 품고 있던 나조차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싶었다. 컴컴한 블라디보스톡에 내렸다. 항구도시 답게 역전에는 부랑자들이 배회했다.
 
다음날 아침 동해의 아침이 블라디보스톡에도 밝았다. 정동진보다 한시간 빨리. 햇살에 아직 아침기운이 남아있을무렵 독수리전망대에 올랐다. 과연...... 천혜의 요새, 세겹으로 둘러쳐진 만과 만 사이로 금각만이라 불리우는 군항이 자리하고 있었다. 외항에서 볼 때 이곳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곳이리라. 블라디보스톡은 그러한 이유로 요동의 뤼순, 대한해협의 마산과 함께 제정 러시아가 그토록 탐냈던 곳이다. 블라디보스톡의 제브쉬까도 항구의 바람 때문인지 더 예쁘고 활발해 보였다. 이국적 제브쉬까 아무리 신기하다고 바닷바람 즐비한 해변가에서 먹은 얼린 곰새우 맛에 비견될 수 있을까. 블라디보스톡은 맛있는 항구였다.
 
브라디보스톡의 바로 북쪽에 우스리스크가 있다. 한인들의 집단거주지가 형성되고 있는 곳이다. 일행 중에는 동북아평화연대 관계자가 있어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자들의 귀환 마을을 엿볼 수 있었다. 오랫만에 삼겹살에 김치도 먹었고...... 얼마만이냐 김치야.
발해의 성터도 둘러보고 조명희가 교편을 잡았던 육성촌마을도 가봤다. 인상적이었다. 조명희 어쩌구 보다도 그 마을 사람들이 희한하게도 아직 사회주의적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신축 교사에는 흙 속에서 건져낸 한인들의 생활용품들을 전시하고 공동묘지를 벌초하기까지 한단다. 흥미로운 일이다.
 
다시 하바롭스크 가는 길. 뜨아~ 시베리아횡단열차의 막막함이 서시히 심장을 옭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탈 수 있을까?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심호흡을 해야지.
 
러시아의 마지막은 비행기에서였다. 세칸 좌석에 나와 일행 한분이 동석했는데, 나머지 한 자리에 서른 즈음의 대머리 루스끼(러시아 남자)가 탔다. 이 사람 부인과 함께 친구의 신혼여행에 따라가는 거란다. 그런데 그 때 이 친구, 러시아 코냑 한병을 꺼내더니 만나서 반갑다고 잔에 따른다. 무시하기 어려워 한잔했다. 원샷. 또 한잔 권한다. 마지못해 한잔했다. 원샷. 이 친구, 러시아에서 술은 홀수로 마시는 거란다. 으~~ 그래서 외교상의 이유로 마셨다. 또 원샷. 그런데 세잔 마시고 나니 이제는 한잔 더 안 주나 하는 주책없는 생각이..... 루스끼 역시.... 우린 셋이서 코냑 대자 한병을 다 비웠다. 남의 술 얻어먹었으니 나도 대접을 해야지. 스튜어디스에게 위스키 부탁했다. 두 잔씩. 하하하하. 그렇게 취해서 서울에 도착했다. 러시아 여행다운 마무리였다.
 
예?
제부쉬까와의 인연 이야기는 왜 없냐고요?
아~ 예~
궁금하시면 술 한잔 사시고 들으시라요~~

다스비다냐 루스까야 제부쉬까 
(안녕히 러시아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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